이 책은 현대중국의 지난 100년을 헌정의제의 역사, 다시 말해 민의 정치참여 확대와 국가의 권한 및 정통성 제고라는 두 요구를 함께 충족시키고자 한 움직임의 연속으로 본다. 이 과정에서 전환점이 두드러진 세 사건으로서, 저자는 1919년 5·4운동,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989년 톈안먼사건에 주목한다. ‘민(民)’은 이 세 사건을 추동한 역사 주체로 등장한다. 1919년을 ‘신청년과 각계 민중연합의 시대’, 1949년을 ‘당과 인민의 시대’, 1989년을 ‘군중자치의 순간’으로 명명한 데서 보듯, ‘민의 결집과 자치의 경험’은 세 사건을 관통하는 주제다. 저자는 ‘운동’, ‘국민국가 형성’, ‘개인’이라는 세 초점을 장착한 렌즈로 이 경험을 투시하면서 지난 100년 변혁의 역동과 곤경을 추적한다. (저자와 한국 지식인 사회가 착목해 온)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1의 수행 주체로서 국가뿐 아니라 민의 역할을 중시하고, 국민국가가 갖는 해방과 억압의 양면성에 주목하며, 자유 주의적 개인의 가정에서 벗어나 개인수양과 사회변혁이 결합한 흐름을 톺아보겠다는 기획을 다초점렌즈를 통해 수행했다. 저자가 “집요저음(basso ostinato)”에 비유한 ‘공화의 확충적 실질화’ 지향이 이 기획 저변의 선율로 반복되는데, 이때 ‘공화(共和)’란 선거를 통한 의사결정과 제도화된 정치에 국한되지 않는 일상적인 공적 참여를 포괄한다.
이러한 접근을 거쳐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중국인들이 장기적인 헌정의제에 부응해온 역사는 결코 단선적이지 않으며, 이의 제를 수행하기 위한 이론적·실천적 노력은 (단절을 포함한) 나선형의 형태로 전개됐다. 중국 현대사를 생산력 발전과 산업화의 진전으로 보는 ‘현대 중국’ 담론, 중국공산당의 반제·반봉건 투쟁 과정으로 보는 ‘혁명 중국’ 담론 양자에 깃든 목적론적 서사에 대한 거부가 담겨 있다. 이 주장은 (저자의 사유의 틀로 자리 잡힌) 이중과제로서의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이 단순히 절충적이거나 선후 관계를 갖는 게 아니라 부단한 긴장 관계를 보여 왔다는 인식에 조응한다. 저자의 두번째 주장은 ‘국가-사회 관계’의 복합성에 관한 여러 학자의 논의와 교차하는 것으 로, 지난 100년간 민의 결집과 자치의 역사가 운동과 제도, 계량(개혁)과 혁명이 (이분화되기보다) 착종된 상태로, 시기마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었다는 점이다. 당국(黨國) 체제의 위상과 역할에 과도한 무게를 두기보다 당과 인민의 상호관계와 역동에 주목함으로써, 저자는 최근 중국의 부상과 미중 갈등 흐름 속에서 더 강력해진 중국특수론(예외론)과 거리를 둔다.